강화본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교동도라는 섬이 있다.

교동향교는 읍내리 148번지에 위치 하고 있으며 월선포에서 내려 대룡리로 향하다 보면 오늘쪽으로 섬의 주 봉우리 격인 화개산 (해발 259m)이 봉긋 솟아 있는데 향교는 그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교동향교는 화개산 북쪽에 있었던 것을 조선 영조 17년 (1741)에 지금의 위치인 남쪽 기슭으로 옮겼다. 그 옛터는 아직도 남아 있어 이곳을 향교골이라고 부르고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각 군과 현에 설치되어 공자 등 옛 성현의 위패를 모스고 제사를 지내며 유생과 마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역할을 한 교육기관 이다.

  교동의 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먼저 공자상을 중국으로부터 가져다 봉안한 유서 깉은 향교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 고려 유학 제거로 있던 문선공 안유(安遊) 선생이 원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닻을 내려 공자상 (孔子像)을 들여와 이 문묘에 봉안 하였다. 이어 다시 김문정 등을 중국에 보내 유학성현들의 화상 10여점과 제기 등을 구해 오게 했다. 이후 경향 각지에 문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교동은 옛날 중국을 고가는 바다 길목에 있어 대부분의 배 들이 그곳을 거쳐 갔다. 안유가 교동향교에 처음 봉헌한 까닭이다.  

 고려 인종 5년(1127년) 때 각주에 향교가 세워졌을 때 화개산 북쪽인 고구리 향교골에 세워졌으며 교동읍이 읍내리로 옮겨짐에 따라 부사 조호신이 영조 17년(174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현존하는 우리나라 243개의 향교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