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강화경찰서 왼쪽 담 옆길을 따라 70m 정도 서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기와집이다. 왕세자와 같이 정상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잠저로는 태조의 함흥 본궁과 개성 경덕궁, 인조의 저경궁과 어의궁, 영조의 창의궁 등이 있다. 대개 잠저는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짓는다. 용흥궁도 원래는 초가였으나, 1853년(철종 4)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뒤 1903년(광무 7)에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다.

좁은 고샅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이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졌다.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헐어진 것을 1974년에 보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잠저구기비각 1동, 내전 l동, 외전 1동, 별전 1동 등이며, 팔작지붕에 홑처마 주심포집이다. 내전은 앞면 7칸, 측면 5칸이며 건평은 90㎡이다. 별전은 앞면 6칸, 측면 2칸인 ‘ㄱ’자형 집으로 건평이 95㎡이다. 비각은 정사각형으로 앞면과 측면이 각각 2.5m로 넓이가 약 6㎡이다.

내전의 오른쪽과 별전의 왼쪽에 각각 우물이 1개씩 있으나 사용할 수 없다. 별전에는 마루 앞으로 작은 정원이 있고, 별전 오른쪽에는 조금 더 큰 규모의 정원이 있었으나 잘 가꾸지 않아 화초가 전혀 없다. 별전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으나, 거의 베어져 밑둥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