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진은 고려시대 강화 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로 초지진과 광성보의 중간에 위치해 군작전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덕진진포대는 덕포진포대와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 제일의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때 양헌수 부대가 야음을 틈타 이 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파했고, 1871년 신미양요때는 로저스가 이끄는 미 극동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덕진진의 성첩과 건물은 이때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만 남아있던 것을 1976년 문루를 다시 세우고 돈대를 복원하였다.

덕진진 내에는 바다를 향해 경고비가 있는데 이는 1867년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그 내용은 '타국선은 어떠한 경우라도 함부로 이 곳을 통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강화는 지형에 따라 쌓은 성이 동북에서 동남으로 이르기까지 약 16km에 달하며, 남, 서, 북 삼면에는 아무런 방비시설이 없어서 소홀한 감이 있었으나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유수 윤이제가 돈대를 쌓아 방비하였다.

남장포대는 강화 9개 포대중의 하나이며 덕진진에 소속되어 대포 10문이 설치되었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 아세아 함대에 맹렬한 포격을 가하여 심한 피해를 입혔으나, 끝내 병기의 열세로 패하고 말았다.